/뉴스레터외설X소라

관세 핵폭탄.

지난 2일 가해진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핵폭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충격이 컸습니다. 직격탄을 맞은 뉴욕 맨해튼 월가(Wall Street)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화구가 생겼습니다.

개미들의 유혈이 낭자한 이틀이었습니다. 지난 3~4일 뉴욕 시장에서만 6조6000억달러(약 9600조원)가량의 시가총액이 폭파돼 화염 속에서 잿더미가 됐습니다.

트럼프에 대한 온갖 말들이 나옵니다. 국내 기사 댓글을 보면 거친 욕설도 난무합니다. 이 기사도 보고 저 기사도 보고, 요 댓글 저 댓글 이것저것 다 둘러봤는데 물음표 하나가 남았습니다.

트럼프는 대체 왜 그러는 걸까?

트럼프가 너무 단순하게 표현하고,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고 하는 등 다른 나라를 함부로 재단하다 보니 거부감이 생깁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충동적으로 정책을 편다고 보진 않습니다.

그를 감정적이고 단선적으로 평가해 깎아내리는 식으로 반응하다간 중요한 걸 놓칠 수 있습니다.

◇‘트럼프 관세’의 큰 그림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로이터 연합뉴스

이번 관세 정책의 이론적 틀은 트럼프의 경제 책사인 스티븐 미란(Stephen Miran)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 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란은 지난달 13일 CEA 위원장에 임명됐는데요, 그가 작년 11월 5일 트럼프 당선 직후 발간한 보고서 하나가 최근 워싱턴 DC와 월가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걸 읽어야 지금의 트럼프 관세 정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미번역 외서를 해제하고, 현장감 넘치는 취재 이야기와 함께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하는 ‘뉴스레터 외설’은 이른바 ‘미란 보고서’를 입수해 읽어보았습니다.

‘미란 보고서’는 그가 백악관 입성 전 미 투자회사 ‘허드슨베이캐피털(HudsonBayCapital)’에 수석 전략가로 있을 때 작성한 42쪽 영문 보고서입니다.

제목은 ‘세계 무역 시스템 재편을 위한 사용자 안내서(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

◇달러 패권의 패러독스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백악관 입성 전인 지난해 11월 투자회사 ‘허드슨베이캐피털(HudsonBayCapital)’ 수석 전략가로서 작성한 보고서. 제목은 ‘세계 무역 시스템 재편을 위한 사용자 안내서(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이다.

보고서는 미국이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이후 구축한 현행 세계 경제 시스템이 되레 미국 제조업을 좀먹는 구조적 함정에 빠져있다는 문제 의식에서 작성됐습니다.

달러가 기축통화이니 좋은 점도 있지만, 세계 각국이 달러를 사들여 달러는 비싸지고, 이에 따라 달러로 만드는 미국산 제품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이 안 되고 무역 적자는 커져만 가는 구조적 악순환에 빠지게 됐다는 것입니다.

수출이 줄면서 미국 제조업도 쇠퇴해버렸는데, 이는 일자리도 감소 시키고, 더 나아가 항공모함·잠수함 등 군함과 같은 군사 무기 장비도 자력으로 제조생산하기 어려워지는 국가 안보 문제로 이어졌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이 구축한 ‘달러 패권 시스템’이 ‘달러의 강세화’를 낳고 이것이 ‘미 제품의 가격 경쟁력 저하’를 낳은 데 이어 다시 ‘수출 감소·수입 증가’를 낳아 ‘제조업 쇠퇴’로 이어진 다음, ‘국가 부채의 무한 증가’와 더불어 ‘국가 기간 산업 붕괴’를 낳아 미 패권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관세로 ‘무역적자 악순환’ 깨기

미 주가 하락 이미지. /뉴스레터외설x소라

미란은 미국이 관세 정책으로 ‘무역 적자 악순환의 고리’를 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강도 높은 관세 부과로 세계 무역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관세로 수입을 억제하고, 인위적으로 미국 국내 생산과 고용을 부흥시키겠다는 것이죠.

닉슨은 베트남전 이후 경제 위기에 빠지고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자 1971년 금태환 정지를 선언(닉슨 쇼크)하며 브레턴우즈 체제를 종식시켰습니다. 그의 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트럼프는 관세 핵폭탄으로 미국을 가난하게 만드는 기존 무역 체제를 갈아엎고 새 판을 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해놓겠다는 계획입니다.

◇인플레이션 미미할 것

미란은 관세 정책을 해도 인플레이션 압박은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앞서 2018~2019년 트럼프 1기 때 대중 관세 정책을 했는데, 당시 심각한 물가 상승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에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면 그만큼 미국에 수입된 중국산 제품이 비싸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관세에 따라 중국 위안화의 가치가 떨어져 실제 가격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란 주장입니다. 반면 관세 수입은 늘어 국가적으론 이득이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미국이 10% 관세를 부과해 중국 제품 가격이 10% 상승하더라도, 위안화 가치가 달러 대비 약 10% 하락해 실제로 미국 달러로 표시된 중국산 제품 가격은 거의 변하지 않는 효과를 얻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또 중국은 보복 관세를 할지 모르지만, 일본, 한국, 동남아 등은 중국처럼 정면 충돌보다는 유화책을 선택할 공산이 커 결과적으로 미국의 관세 정책이 성공할 것이라고 미란은 내다봤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군사·경제 최강국인 미국를 상대로 보복 관세 등을 가하며 대치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결국 대미 관세를 낮추는 방향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기축통화 유지비도 분담하자

그래픽=김하경

미란은 보고서에서 미국이 달러를 기축통화로서 유지하느라 부담하는 비용을 동맹과 분담해야한다는 주장도 합니다.

보통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발생하면 그 나라 통화가치는 떨어지기 때문에 그 나라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살아나 수출이 증가돼 무역적자가 메워지는 균형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고 계속 경상수지 적자를 봐야 하고 부채 이자를 내야 합니다. 이에 동맹들이 방위비 분담금을 내듯이 기축통화 유지 비용도 동맹들이 일부 내도록 유도하자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미란은 일명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라는 걸 제안합니다. 동맹국들에 강제로 10년 이하의 단기 미국 국채를 100년 만기의 초장기 국채로 교체하도록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발행된 초장기 국채의 핵심은 이자율이 거의 제로(무이자 수준)에 가까워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미국이 부담하는 이자 비용을 급격히 줄여,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부담을 완화합니다. 달러 자산을 보유한 동맹국들에 달러화 평가절하에 따른 부담을 분담시키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죠.

그래픽=백형선

황당한 발상인데, 미란이 올 3월 백악관에 들어가고, 트럼프가 핵폭탄급 관세 정책을 펴면서, 월가에선 “미란 보고서가 차차 현실화되는 것 아니야”라는 말이 나옵니다.

미란이 제안한 대로 기축통화 유지비 분담 정책까지 시행될지는 모릅니다. 다만 지금 벌어지는 관세 정책의 기저에는 미국이 기축통화국으로서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나누고 실속을 좀 더 챙기는 구조를 설계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것입니다.

◇ ‘트럼프 관세’ 설계자 미란은 누구?

미란은 2005년 보스턴대를 졸업하고 2010년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습니다. 자산관리회사인 앰버웨이브 파트너스를 공동 창업했고, 맨해튼 연구소 연구원도 지냈습니다.

2020~2021년에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부 장관의 경제정책 고문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허드슨베이캐피털 수석전략가로 지내다 올해 3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이 되면서 트럼프의 경제 책사가 됐습니다.

그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제롬 파월 의장에 비판적인 인물로 평가됩니다. 2020년 파월의 경기부양책 권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미란은 관세 발표 사흘 뒤인 5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규제 완화와 감세 정책이 이번 관세 인상의 영향을 상쇄할 것”이라면서 월가의 경기 침체 우려를 일축했습니다.

미란의 주장이 맞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미란 보고서’를 보면서 트럼프의 정책이 맞든 틀리든 일관된 맥락은 있는 듯했습니다.

지난 2일 워싱턴 D.C. 백악관 앞 장미 정원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부자로'라는 이름의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 관세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트럼프가 한국에 조선업 협력 SOS를 친 것도 큰 틀에서 보면 이번 관세 정책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달러 패권 패러독스로 제조업이 쇠퇴해 자국 조선업이 무너져 민간 선박은커녕 군함의 수리·정비·유지마저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K조선에 손을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방위비 분담금도 대폭 인상하겠다는 것이나 기축통화 유지비 분담 발상도 유사합니다.

미란 보고서를 보면서 앞으로 트럼프가 관세 정책 같은 핵폭탄을 또 발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트럼프의 경제 책사 미란이 앞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는지 추적 관찰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관심이 있으신가요? 아래 버튼을 클릭해 뉴스레터 외설을 구독하시면 ‘미란 동향 보고서’를 틈틈이 챙겨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드리며, 이번 외설은 여기까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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