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 오늘따라 잘 맞네.” “굿 샷!”
지난 8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탄천의 파크골프장에서 선글라스와 팔 토시를 착용한 60~70대 남녀 어르신 네 명이 순서대로 공을 때렸다. 파크골프는 공원처럼 작은 공간에서 골프보다 짧은 거리를 치는 ‘미니 골프’다. 김보애(70)씨는 “가벼운 운동으로 건강도 챙기고 친구도 사귀니 노인들에겐 이만한 취미가 없다”며 “골프장 온라인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라 손주가 도와줘서 겨우 잡았다”고 했다. 면적 2만4552㎡(약 7400평)로 서울 최대 규모인 탄천 파크골프장은 9홀짜리 3개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골프장 관계자는 “예약이 힘들다는 민원이 빗발쳐 두 달 전부터 운영 횟수를 늘렸다”고 했다.
일반 골프장은 홀 사이 거리가 약 130~500m지만, 파크골프장은 40~150m 정도다. 일반 골프와 달리 전용 미니 골프채 1개만 있으면 된다. 입장료도 5000원 미만으로 저렴해 급속도로 중장년층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파크골프장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전국 곳곳에서 “특정 연령대만을 위한 공간을 왜 짓느냐” “가족이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든다”는 항의가 거세지고 있다. 비수도권 농촌 지역에서도 파크골프장 건설이 추진되면서 농민들의 반발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중장년층의 여가 시설을 확대하자는 취지인데 ‘세대·도농(都農)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의 한 파크골프장에서는 “오늘도 재밌게 치고 갑니다”라며 80여 명의 노인이 골프를 즐긴 뒤 골프장을 떠나고 있었다. 서울시는 이곳으로부터 300m 떨어진 캠핑장 일부 부지에 18홀짜리 파크골프장을 추가로 짓기로 하고 지난달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캠핑장 들판에 성인 남성 허리까지 올라오는 안전 펜스와 ‘접근 금지’라고 적힌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캠핑장 부지 일부에 파크골프장을 만든다는 소식에 아이 키우는 부모들과 노년층 반응은 갈렸다. 이날 가족들과 캠핑장을 찾은 윤상윤(49)씨는 “서울에 아이들이 맘 편히 뛰놀 공간이 안 그래도 많지 않은데 이곳을 더 줄이고 골프장을 만든다니 어이가 없다”고 했다. 반면 파크골프장에서 만난 김경자(72)씨는 “2분 만에 예약이 다 마감될 정도로 파크골프장을 찾겠다는 노년층 수요가 많은데, 지자체들이 이런 상황에 대응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서초구도 지난 3월부터 청계산에 파크골프장 공사를 하고 있지만, 구민들은 “왜 개방된 녹지에 일부 세대만 이용하는 폐쇄형 시설을 짓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파크골프장 조성 장소가 확정된 이후에도 젊은 주민들 반발로 사업이 무산되거나 표류하는 경우도 많다.
충남 홍성군 용산리에서 군유지를 빌려 농사를 짓고 있는 민용호(55)씨는 지난 4월 지자체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민씨가 지난 2월부터 5년간 빌린 땅을 포함한 일대가 골프장 부지로 선정돼 18~27홀 규모의 골프장이 들어설 것이라며 오는 12월까지 농사를 정리하라는 것이었다. 민씨는 “이곳 농민들 대다수는 평생 골프를 쳐본 적 없다”며 “근처 신도시 주민들의 오락을 위해 농민들이 하루아침에 농지를 빼앗길 처지가 됐다”고 했다. 민씨는 지난달부터 농민 30여 명과 탄원서를 써 홍성군에 제출하고 시위하고 있다.
생태 파괴 우려도 나온다. 서울 강남구는 지난 1월 대모산 부지에 18홀 규모의 파크골프장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강남의 ‘아마존’ 같은 대모산을 헐어 골프장을 만들면 주민들은 어디서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겠느냐” “산사태가 날까 무섭다”며 반발했다. 주민들은 ‘대모산 산사태 부르는 파크골프 중단하라’는 현수막도 내걸었다. 강남구는 지난 9일 간담회까지 열면서 설득 작업을 벌였지만 여전히 반대 여론이 거세다.
그럼에도 파크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은 계속 늘고 있다. 대한파크골프협회에 따르면 회원 수는 2020년 4만5478명에서 2024년에는 18만3788명으로 늘었다. 4년 만에 회원 수가 4배 이상 늘었다. 국내 파크골프장 수도 2020년 254개에서 2024년 411개로 늘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민 갈등을 막으려면 결국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빈 공간을 찾아야 하는데, 요즘 도시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5~6홀짜리 ‘미니 파크골프장’이라도 짓기 위해 각 구청과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